《용을 품은 작은 소년》 한강변 작은 소년이 용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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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저자가 직접 볼펜으로 그린 그림
누군가의 삶을 건네받아 문장으로 재구성한다는 건, 기록자로서의 책임 이전에 그 사람의 생애 전체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일이기에 쉽지 않습니다. 좋은 것만 추려낼 수 없고, 불편한 것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그분이 살아낸 삶의 결을 최대한 그대로 살려야 하니까요.
이야기를 받아들던 날
안 회장님의 이야기를 처음 건네받았을 때, 솔직히 분량도 방대했고, 다루어야 할 주제의 층위도 여러 겹이라서 골라내는 데 신중해야 했습니다. 장인정신이라는 거대한 화두부터 시작해서, 일찍 부모를 여읜 소년의 심정과 유모차 사업 실패, 일본 유학. 특허 도용 소송, 그리고 300건이 넘는 특허 등록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의 삶 속에 빼곡히 담겨 있었죠.
처음에는 '성공한 사업가의 분투기'로 시작되는가 했으나 인터뷰 횟수가 거듭될수록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단순한 성공담이기 보다는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믿는다는 것, 기록한다는 것, 그리고 끝내 살아낸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끔 저를 이끌었습니다.
이번 후기는 그 긴 작업의 끝자락에서, 저 또한 느끼고 배운 것들을 솔직하게 적어두려는 기록에서 출발했습니다.
이야기를 전개하며 가장 먼저 제 가슴에 콕 박힌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제품 앞에서 외친 그 한마디.
"전량, 폐기하세요."
직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 얼굴만 바라보는 장면입니다. 이미 투입된 모든 자원을 생각하면 쉽게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죠.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 정도면 됐지', '시장에 내놓고 보완하면 되겠지'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을 법도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 결단의 뿌리가 된 건, 중학교 1학년 때 용산극장에서 본 다큐멘터리 한 편이었습니다. 백토를 찾아 전국을 수년간 헤매던 조선 사기장 이삼평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혼신을 바쳐 완성한 도자기의 반 이상을 자기 손으로 파쇄하는 도공의 모습. 그리고 그가 혼잣말처럼 내뱉는 한마디가 생애를 온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많은 작품보다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해.”
그 말이 열두 살 소년의 가슴에 꽂혔던 것이죠. 수십 년이 흐른 뒤에도 그 기억이 남아, 실제 결단의 순간마다 행동 기준이 되었던 것입니다. 제품 하나에 작은 흠결이라도 생기면 출시를 허락하지 않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기존 제품까지 전량 회수하고 폐기하는 결정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소비자와의 약속이자 자기 자신과의 약속. 누구나 생각은 하지만 실행하기는 쉽지 않은 고집. 이런 고집이 만든 결과물이 우리 삶에서 보여지는 진심 그대로 저에게도 전달되었습니다.
실패를 가르치는 방식
회장님은 창업 초기, 직장 상사이던 윤*노라는 사람과 함께 '마미상사'라는 브랜드로 보행기와 유모차를 생산해 판매한 적이 있습니다. 보행기는 그런대로 팔렸는데 유모차는 수요가 좀체 일어나지 않았죠. 예상치 못한 적자가 쌓였고, 끝내 사업을 접어야 했습니다.
문제는 그 당시에는 실패의 원인을 정확히 몰랐다는 점입니다. 제품 자체의 하자도 없었고, 기존 제품에 비해 가볍고 편의성도 높았습니다. 가격 경쟁력도 나쁘지 않았죠. 그런데도 왜 팔리지 않았는지 그때는 납득하기 어려웠다고 했습니다.
그 해답을 일본으로 건너가서야 비로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유모차가 팔리려면 제품만 좋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유모차를 실제로 끌고 다닐 수 있는 보도 환경, 전철로 아이와 함께 이동할 수 있는 교통 인프라, 여성 자가운전자의 비율. 이 모든 사회적 여건이 받쳐주어야 유모차가 생활 속 제품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한국은 보도블록 포장 상태가 나빠 가벼운 유모차는 오히려 보행에 불편을 줄 수 있었고, 일본처럼 전철로 아이와 이동하는 문화도 형성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요컨대, 제품은 앞서갔지만 세상이 따라오지 못한 것이죠.
저는 이 부분을 서술하면서 무릎을 탁, 쳤습니다. 실패를 이야기하는 방식이 남달랐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이야기할 때 억울함이나 자기변명을 먼저 앞세우는 반면, 회장님은 실패의 원인을 제품 밖에서 찾았습니다. 또 그 경험을 이후 사업의 교훈으로 삼았기에 안목이 커졌습니다.
그 실패가 없었다면 회전 옷걸이라는 히트 상품도 없었을 것이고, 그 실패가 없었다면 일본에서 카탈로그를 수집하며 ‘언젠가 국내 정황에 맞는 제품을 상품화하겠다’라는 구체적인 계획도 세우지 못했을 것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은 다른 이야기니까요.

기록이 목숨을 구했다
또한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빼고 이번 작품을 논하기는 어렵습니다.
회장님은 어릴 때부터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림으로 그려 기록하는 습관을 가졌습니다. 혼자 아까시나무 아래 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다가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를 종이에 옮겨 적고, 도면처럼 그려두었습니다. 실제로 그 기록들을 토대로 어릴 때 발명한 생활 도구들이 꽤 있었고, 결혼 후 이사하며 짐을 정리하다 우연히 그 노트를 발견한 아내가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하셨냐?”라며 놀랐다는 대목도 나옵니다.
그런데 이 기록 습관이 단순한 개인의 버릇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 책의 핵심 에피소드 중 하나인데요. 사업이 자리를 잡아가던 무렵, 거래처 사장 송*섭이라는 인물이 안 회장님이 개발한 제품을 자기 이름으로 실용신안 특허를 등록해 버렸습니다. 개발한 사람은 안 회장님인데, 그 제품을 독점 납품받던 거래처 사장이 특허 등록을 해버린 것이죠. 심지어 부도를 내고 잠적했다가 뻔뻔하게 찾아와서 “내가 특허를 다 등록해 놨기 때문에 당신은 판매할 수 없어”라고 협박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납니다. 승소한 것이죠. 일본에 있을 때부터 모아두었던 카탈로그와 설계 도면이 주요했습니다. 일본에서 일하며 신주쿠와 시부야 백화점을 돌며 수집했던 자료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이어온 기록 습관이 쌓인 설계 도면들. 그것들이 개발 선행의 증거가 되었고, 송경섭의 특허 등록보다 앞서 만들어진 기록임이 소명되었던 것이죠.
일곱 살의 고아가 품었던 용
이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에는 한강변 흑석동의 작은 소년이 있습니다. 일곱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같은 해 가을 아버지마저 떠나며 그는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었습니다. 꿈 많던 개성여고 학생이었던 누나는 어린 나이에 소녀 가장이 되어 동생들을 지탱했습니다.
입대하는 날 빗속에서 기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던 누나. 훈련소에서 받았던 편지마다 "건강해졌다"던 그 소식이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는 첫 휴가에서야 알았습니다. 누나는 입대 후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집으로 달려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한동안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형수의 냉대 속에 물지게를 지며 어린 시절을 버텨야 했고, 중학교 원서조차 제때 접수하지 못했던 소년. 그러나 그는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 중견기업을 일구고, 300건이 넘는 특허를 남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여정을 따라가며 한 인간이 감당해낸 시간의 무게에 온전히 감정이 이입되면서 먹먹해졌습니다.
[Writer's Note] 다산 정약용 선생의 “기억은 흐려지고 생각은 사라진다. 머리를 믿지 말고 손을 믿어라!”라는 말씀처럼 기록은 기억이 흐려지고 사람이 사라진 뒤에도 남습니다. 귀한 생애에 기록하는 자로 동참할 수 있게 되어 뜨거운 보람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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